주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허락하신 생명과 진리를 근거하여 구원을 말로만이 아니라 인격과 삶으로 증거하는 자로서 부름을 받는다.
신자란 무엇인가? 누구인가?
신자의 정체성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믿고 사는가?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창조, 섭리, 심판권,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믿는 것.
하나님의 존재와 권세와 함께 근본적인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이것을 더해야 한다.
하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이 두가지가 핵심.
우리가 죄인이어서 죽은자이기에 그리스도의 중보가 필요함.
믿음은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 거듭나지 않고는 진리를 소유할 수 없다.
그것은 소원과 정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요1:17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래서 믿음의 내용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이 통해야 한다.
인간은 진리와 선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진리와 생명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배제되고 논의되는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 그저 이상과 관념속에 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 유일하신 권위가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
믿음의 핵심은 진리이며 그 진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직결된다.
생명에 관한 것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를 믿지 못하고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진리란 생명의 올바른 길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신앙은 진리는 외치나 생명이 없다.
생명은 하나님과 화목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제자삼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는 가를 보여야 한다. 그 믿음의 내용은 진리와 생명이지, 능력과 의욕이 아니다. 이것은 자랑할 일거리를 달라고 하게 된다.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이면, 인격과 성품에 관한 것이 된다.
제자훈련은 일종의 능력을 과시하며 주를 향한 내 열심이 나타는 것으로 제자훈련은 일반 법칙이 아니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원리와 자세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의욕과 능력 열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삶의 원리와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딤후 4:1 -
하나님앞과 그리스도예수 앞에서,,,,
경쟁적이고 자기증명적인 신앙생활을하라는 것은 약점이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사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과시용으로 뽑ㅎ지않았습니다.
나의 존재, 삶을 어디로 방향잡고,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이냐인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진 자, 유명한 자와 비교할 필요없습니다.
엘리트화 전문화 되는 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 만큼만 사세요.
믿음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격을 변화시는 것이여야지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한 방법과 수단이 아닙니다. 전도, 성공을 위한 믿음은 없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를 지키며 인내하며 충성하는 안목과 분별과 인내를 만드는 것이어야지. 무엇을 만드는 기술은 아닙니다.
어떤 소원을 두고 믿음을 동원하는 것이 문제다.
믿음은 소원하는 것을 방법이 되었다.
하나님앞에 나와서 나는 이것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 그것은 땡깡이다.
신자란 무엇인가?
하나님앞에서 사는 자.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 이것은 거룩한 자. 하나님께 속한 자.
믿음의 내용
진리와 생명에 과한 것,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 그것은 거룩한 것.
현실적으로 실천적으로 보면
첫번째, 죄인된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분별; 세상과 결별하는 것. 엡4:17
허망함,
정답이 있고, 진리를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는 편협하다고 비판받는다.
모든 것에다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여성인권운동가?? 허망함.
그런 허망한 사람들이 떼를 지으면 설득력을 갖는다. 세상에서는.
유행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다수에 의해 결정. 다수가 공감하는 것은 거의 틀리다.
딤후3:2-
겨자씨
신앙은 기술, 주문이 아니요.
생명이 자라나는 것,,,
생명은 당연한 성장을 하는 것.
고후5:
생명이 자라나 완성되는 것; 이런 의미에서 종말론 적이다; 현실 무가치의 의미가 아니다.
고후 5:6,7-
지금여기서 생명이 진리안에서 자라나는 것을 시작해야 되고,
거기서 그 때 받을 평가를 위해서 지금 여기서 가꾸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가진자. 이 생명이 진리안에서 커갈 것이다. 그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일반적인 제자 훈련의 촛점은 모든 믿는 자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 특수요원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소명을 가진 자들을 위해서도 쓰여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는 것.
이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생명은 은혜로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것. 당연히 진리에 대한 갈증을 가진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 힘은 얻어집니다.
믿음의 핵심이 진리와 생명,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기에 믿음은 진리에 근거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소원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는 것과 대비해서 ,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위하여 정성을 드리는 것,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하여 초월적인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배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나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 가,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아는 것,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아는 것.
마6:25-30; 무엇을 위하여
공중나는 새를 보라, 생각해 봐라. 하나님이 먹이신다. 내 아버지가 먹이신다. 그러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생각하여 보라,
최인호씨,
나이들면 나이든 값을 하세요.
가을이 들면 열매가 얻어야 지, 다시 꽃이 피면 이상하다.
가장 멋진 것은 하나님이 주신 데로입니다. 넉넉하고 분별이 있고, 포용력이 있고, 표정잡을 줄 알고, 잘난척 하지 않고,
강아지 풀, 겨울이라는 것은 혹독한 계절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기술적 측면이 아니다. 하박국 2장 4절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시편 73편
우리의 분별과 안목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형통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시105편, 여호와의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여 우리가 진리와 생명안에 있는 법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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