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생명으로서의 변화는 복음증언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전도는 방법이 아니라 삶의 증거로서의 모습이 전제이고 그 다음이 전도의 방법의 모색으로 가야하는데 한국은 일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것이 성숙하지 못했다.
요8:31
기독교가 배타적인 이유는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자는 무엇이든지 상관없고,
정답이 있는 자는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행사에는 익숙한데, 집에 돌아가면 현실적인 생활에서는 조금도 양보를 안한다. 융통성과 재주만 늘었다. 구역공부 10분 하고 나머지는 세상이야기한다.
엡4:17
진리가 없는 자, 믿지 않는자, 과녁이 없는자, 허망한 자, 총명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자, 무지한 자, 감각이 없는 자, 방탕에 방임한 자
위선과 교활함:
나이가 들면 경륜이 있어야 한다. 분별과 경험에 의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저 사람처럼 교활하진 않아 이렇게 변명하면 안된다.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속이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이 되어 있어야 한다.
20절
진리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는 데, 우리는 그 것을 가지고 거룩한 삶의 익숙함으로 가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절제, 참고 양보, 희생하는 이 모든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표정과 습관과 삶을 바꾸어 나가는 것.
신자일반에게 요구되는 본질적인 책임인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을 근거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격과 습관을 만드는 것,
예수를 닮는 것,
25절
거짓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다.
마 5:13-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예수의 증인의 기준 : 진리
둘째, 생명
생명있는 것 만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새로 태어난 자라는 것을 보이는 것은 생명을 맺는 열매로 보이는 것.
갈5:22
생명이 있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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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기술이나 업적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우리 된 것이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로서 있어져야 되는 증언이라면, 전도가 그 기술적으로 발전해서는 안되죠, 기술성이 없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쪽으로 본질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심과 정성의 표현으로서 기술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수단과 결과라는 ㅊ차원에서 기술화 되면 안된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이런 것을 어떻게 증언할 것인가의 문제와 위의 내용이 연결
제자훈련이 특수기술훈련이라면 우리는 자꾸 기술자가 되어야 된다.
그러나 신자일반에게 요구되는 본질적인 문제가 제자훈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사람을 입으라
무지와 허망함을 벗고,
엡4장 25절
이런 말씀데로 순종하려면,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 가서 또 가면서 썅할 수 있겠어요. 우리끼리 모아놓으면 다 잘한다.
그러니까 나가서 훈련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꼭 짜증나는, 성질나는 곳으로 몰아내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로 요구한다. 이렇게 하시면 우리가 잘 하겠다고 한다.
공부는 고달프다. 책임이 있으니까
신앙이 별볼일 없으니까 만사가 형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증인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환경과 조건으로 인도하시는 지를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의 형태나 명분 보다
하나님이 나를 경건한 연습을 시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증언케 하는 실습 환경과 현장을 결정하시더라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
창12 장 아브라함의 생애
이제부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저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 가 보고, 하나님을 발견할 기회를 주신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복의 근원이예요.
아브라함을 보고 축복한다. : 너를 지키는 하나님은 과연 놀라운 분이구나. 나도 그 하나님의 보호하심속에 있길 원한다. 이런 뜻이되는 것이다.
아브라힘을 보고 저주한다: 너는 왜 네 한 몸 먹고 네 뜻대로 살기도 바쁜데 무슨 하나님인지 누군지를 섬긴다고 그 고생을 하느냐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그의 생애를 보고 못 봤으며, 그게 저주예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거예요.
호
1차적인 임무는 전도지 돌리고, 선교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보고 여러분을 축복할 지 저주할 지에 대한 책임있는 삶이다.
신명기 28장 축복의 약속과 저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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